어렸을 적, 논을 얼려 만든 동네 스케이트장에 매일 출근했습니다. 코끝 찡한 겨울 아침 얼음판 위에 서면, 고르지는 않아도 깨끗한 그 표면에 첫 선을 그을 기대로 가슴이 뛰었지요. ‘사가각’ 톱니가 경쾌하게 얼음을 긁는 소리, 차가운 얼음 위에 쏟아지는 따뜻한 겨울 햇볕, 속도를 낼수록 느껴지는 바람, 등줄기를 흐르는 땀, 얼음 위에 새겨지는 나의 궤적…. 이 기억들이 「선」의 시작이 되었습니다.
얼음판 위에 내가 그리는 선, 그림, 실수, 좌절, 지워내기, 다시 그리기, 그 모든 것이 겹겹이 쌓이는 과정들이 창작의 과정과 비슷하지요. 「선」에서는 언뜻 보면 연관 없는 두 세계가 동시에 함께 굴러갑니다. 두 개의 이야기는 서로 모른 척 평행으로 달리다가 어느 순간 만나고 헤어지지요. 그림책은 그런 서로 다른 세계를 동시에 담아내기 좋은 매체입니다. 글이 없어서 더 이야깃거리가 많은 그림책 「선」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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